국세청이 하나은행에 대해 1조원대의 법인세를 추징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세청은 하나은행이 2002년 적자 상태였던 서울은행과 합병 당시 서울은행의 결손금을 공제받는 과정에서 관련 세법을 어겼는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려달라고 지난달 재정경제부에 국세청장 명의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국세청은 이미 내부적으로 과세 여부와 과세금액에 대한 검토를 거의 마치고 과세논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이 같은 절차를 밟은 것이다.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올해 초 실시한 하나은행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 결과 2002년 말 합병 후 2006년까지 5년 동안 과다 손비처리 등을 이유로 하나은행에 대해 1조3000억원가량(가산세 포함)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 세금이 추징된다면 은행권은 물론 다른 국내 기업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세금 추징이다.

국세청 결정대로 과세될 경우 하나은행은 물론 최근 합병이 성사된 다른 금융권에도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2004년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2003년 국민카드 합병 당시 결손금을 이월받아 세금을 줄이려다 회계기준 위반 혐의로 금융감독 당국에서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날 "최근 하나은행-서울은행 합병 건과 관련해 법인세를 부과하는 문제를 두고 국세청장 명의의 질의가 들어온 것은 맞다"며 "현재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지만 법 개정 등 다른 현안 때문에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 합병 때 결손법인을 존속법인으로 하는 역합병은 탈세에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법인세 부과 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이 역합병에 해당하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이월결손금이 많은 피합병기업을 형식상 존속기업(합병기업)으로 만들어 합병 절차를 진행할 때 역합병이라고 부른다.

현재 합병법인이 피합병법인의 이월결손금을 승계해 공제받은 후 세금을 줄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역합병의 방법을 채택하고 변칙적으로 손비를 늘려 세금을 줄이려고 시도하는 사례도 있다.

하나은행은 2002년 서울은행과 합병 당시 적자기업이었던 서울은행을 존속기업으로 놔두고 하나은행을 소멸기업으로 처리했다. 상호는 `하나은행`을 채택했다.

회계업계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합병 이후 5년 동안 약 1조7000억원의 결손금을 활용해 5000억원대 세금절감 혜택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결손법인을 피합병법인이 아닌 존속법인으로 남겨두고 합병 후 2년 내 피합병법인의 상호로 다시 변경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게 되면 역합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계업계는 하나은행이 거액의 대손충당금 등을 서울은행 시절에 손비처리하지 않고 합병 후 손비처리하거나 접대비 등 항목에서 법을 어긴 사례도 적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합병 전 서울은행이 손비로 처리해야 할 대손충당금을 매년 손비처리하지 않고 있다가 합병 후 손비처리하게 되면 합병 후 하나은행은 법인세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세청도 올해 상반기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에 각각 4419억원과 1740억원의 법인세를 부과할 때와 마찬가지 과세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에서 문제가 됐던 대손충당금 승계는 적자법인을 인수ㆍ합병한 흑자법인에 법인세를 부과할 경우 인수한 적자법인의 손실액을 얼마나 비용으로 처리해 주느냐 하는 부분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결손금을 이월받아 절감한 법인세 규모가 5000억원대고 서울은행이 합병 전에 쌓지 않고 있던 대손충당금을 합병 후 적립하는 등 방식으로 세금을 절감했다면 가산세를 감안한 과세 규모는 1조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절감한 세금 규모가 약 6000억원일 경우 소득을 적게 신고하고 세금을 덜 낸 데 따른 가산세 등을 감안하면 가산세 등이 원래 더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엔 법인세 부과 후 이익인 당기순이익이 오히려 법인세를 내기 전 순이익보다 많았다. 2003년과 2004년 당기순이익은 법인세 차감 전 순익보다 각각 244억원과 3222억원씩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업 회계는 실제 세금 규모를 반영하지 못하지만 어찌됐든 하나은행은 옛 서울은행의 결손금 이월에 따라 혜택을 본 것으로 해석된다. 회계업계는 합병 당시 주식평가 등 다른 부분에서도 과세와 관련된 쟁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하나은행에 대해 아직 과세 단계가 아닌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은 올해 초부터 하나은행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법인세 과세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지만 결국 인수ㆍ합병 과정에서 적자법인과 흑자법인의 회계처리에 대한 법령 해석이 과세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막대한 규모의 세금 추징 여부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릴 때 정부는 법 논리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은 물론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감안한다"며 "국세청의 질의에 대한 해석은 상당 기간 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합병 당시 하나은행이 법적 검토를 한 결과 나온 합병 방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나은행이 당시 법을 어겨가면서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정기 세무조사 결과 무리하게 과세를 추진해 엄청난 금액이 산정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나은행은 과세가 결정되더라도 세무당국에 이의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과세 여부와 규모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 <용어> 존속법인과 역합병 =

존속법인이란 두 기업이 인수ㆍ합병한 후 남는 법인을 말한다. 반대로 소멸법인은 실체가 사라지는 법인이다. 2002년 합병한 하나은행과 서울은행 중 존속기업은 적자법인인 서울은행이고 소멸법인은 하나은행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하나은행을 상호로 사용하기로 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결손금을 가진 적자기업을 형식상 존속기업으로 만들어 합병절차를 진행할 때 역합병이라고 부른다.

■ 이월결손금 =

기업이 어떤 사업연도에 수익보다 비용이 많아 손해, 즉 결손이 생겼을 때 당해연도에만 법인세를 면제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5년까지 다음 연도로 넘겨 세금면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올해 150만원 결손을 낸 법인은 이듬해 100만원 흑자를 보았더라도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150만원 손해가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과세대상 소득이 없는 것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 대손충당금 =

은행이 대출 이후 예상되는 상환 불이행에 대비해 미리 적립금으로 쌓아놓는 금액을 말한다.

은행들은 부실 위험 정도에 따라 적립비율을 달리해 장부상에 충당금을 적립한다.

부실해질 가능성이 큰 자산에 대해 그만큼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하고 부실 가능성이 적을수록 충당금을 적게 쌓아도 된다. 해당 충당금은 회계처리상 비용으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