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공모자금 5兆 중 한푼도 못 건져
삼성車 채권단·신세계 등 기존 주주들만 혜택 독점
"글로벌 도약 위한 자본확충" 당초 상장 명분과 동떨어져지난해 11월 16일 삼성생명이 상장(上場) 계획을 발표했을 때 시장의 관심은 "상장의 진짜 목적이 뭐냐"에 쏠렸다. 대체로 기업들이 상장을 하는 목적은 시설 투자 등 회사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삼성생명은 상장 계획 발표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상장 목적을 이렇게 발표했었다. '향후 자본 건전성 규제 강화, 국제 회계 기준 도입 등에 점진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도 상장을 통해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있음. 삼성생명의 2015년 중장기 목표인 '글로벌 (생명보험사) 톱 15위권 진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본 확충을 통한 사전 준비가 필요함.' 한마디로 글로벌 보험사로 도약하기 위한 자본 확충을 상장 목적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오는 5월 12일 상장하는 삼성생명은 당초 밝혔던 목적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23일 공모가격이 11만원(액면가 500원)으로 정해지면서 삼성생명의 공모(公募) 규모가 사상 최대인 4조8881억원으로 결정됐지만, 이 중 삼성생명이란 회사 몫으로 남는 돈은 한 푼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의 상장 명분이었던 '자본 확충'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회사로 유입되는 자금은 전무(全無)='본 공모는 100% 구주(舊株) 매출이므로 공모로 인해 (삼성생명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없으며 이에 따라 구체적인 자금의 사용 목적을 기재하지 않습니다.' 삼성생명이 23일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투자설명서'의 '자금의 사용 목적'란에 밝힌 내용이다. 삼성생명에 따르면 이번 공모로 마련한 자금은 구주 매출에 참여해 주식을 내놓은 신세계 CJ제일제당이 각각 5500억원씩 가져가고, 나머지 3조7881억원은 우리은행 서울보증보험 등 18개 채권단 몫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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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삼성생명은 이번 상장을 위해 주간 증권사에 지급하는 인수수수료 489억원과 법무법인·회계법인 등에 지급하는 각종 수수료 등을 합쳐 총 553억원의 비용을 지불하도록 돼 있다. 상장을 위해 500억원이 넘는 돈을 쓰고 한 푼도 못 건진 셈이다. 회사 차원에선 손해뿐이다.
이처럼 거액의 공모에도 불구하고 회사로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이유는 삼성생명이 다른 상장기업들과 달리 이미 다른 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만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모하는 구주매출을 택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통상 상장할 때 납입자본금을 늘리고 신규로 주식을 발행해 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 상장기업은 상장할 때 마련한 자금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 기업가치와 주가를 높임으로써 주식을 사준 주주들에게 보답한다.
반면 구주 매출의 경우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만 바뀔 뿐 회사로 신규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다.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신사업 투자→기업가치(주가) 상승'이라는 선순환(善循環)이 원천 봉쇄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100여개 기업 중 삼성생명처럼 신주 발행을 안 하고 구주 매출을 통해 상장한 기업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단 한 곳뿐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SK C&C와 삼성생명 모두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로서 신주 발행을 할 경우 기존 대주주들의 지분이 희석(dilution·주식 수가 많아져 지분율이 낮아지는 현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액면분할 안 했으면 상장 못할 뻔=이번 상장을 앞두고 실시한 액면분할의 목적도 당초 삼성생명의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삼성생명은 상장 계획을 발표한 지 보름여 만인 지난해 12월 2일 주식 액면가를 5000원에서 500원으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결의했다. 액면분할의 이유로 당시 삼성생명은 "상장 후 유통주식 수 부족에 따른 주가 하락 요인을 막고 심리적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해 액면분할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설명과 달리 액면분할은 상장요건을 맞추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행 거래소 상장 규정에 따르면 삼성생명처럼 자기자본이 2500억원을 넘는 회사는 '지분율 10% 이상+500만주 이상'을 공모하도록 돼 있다. 삼성생명의 이번 공모주식 수는 4443만7420주(액면가 500원 기준)로, 만일 액면분할을 하지 않았다면 444만3742주에 그쳐 500만주 이상이란 상장요건에 미달했다.
◆채권단과 빚 문제 완전 청산은 어려울 듯=이번 삼성생명 상장의 최대 수혜자는 채권단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1999년 삼성자동차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채권단 손실 보전을 위해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약 350만주(액면분할 후 3500만주)를 제공했다. 당시 부채 원금이 2조4500억원이었는데 삼성생명 주가를 70만원(액면분할 후 7만원)으로 계산한 것이다. 이번 공모가가 11만원으로 책정되면서 채권단은 삼성차 부채 원금을 모두 회수하게 됐다.
하지만 법정관리 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발생한 연체이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삼성이나 채권단 모두 말을 아낀 채 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다. 채권단은 지난 2005년 12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해 삼성차 부채 원금에 연체이자(연 19%)를 합쳐 5조2034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 이 회장과 삼성그룹이 이자를 지급할 의무는 있지만, 연체이자 19%는 과도한 만큼 법정이자율인 연 6%의 이자만 내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양측이 모두 반발해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1심 판결대로 연 6%의 이자만 받고 소송을 끝내고 싶어도 혹시 나중에 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제소당할까 봐 곤혹스러운 입장"이라며 "삼성생명 상장과 무관하게 소송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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