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삽코리아/한국우리사주협회

“경영권 유지·승계 위한 M&A, 산업 발전엔 의문”
대주주 일방적인 결정이 후유증 남길수도
혈세투입 기업 매각땐 국민참여 논의 있어야

[본입찰을 10여일 앞둔 현대건설 매각에 대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수후보인 현대자동차와 현대그룹의 도덕성 논란이 여전한데다 양측이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인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현대건설 매각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현대건설 매각 본입찰이 다가오면서 현대차와 현대그룹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그룹이 '적통성'을 주장하며 명분을 앞세운다면 현대차는 '풍부한 자금력과 시너지효과' 등 경제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현대그룹은 원래부터 현대건설의 주인이었으며 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정몽헌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는 등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은 채권단에 우선매수청구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실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난 2006년부터 치밀하게 인수전을 준비해왔다.

반면 현대차는 '장자계승론'과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현대건설 인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그룹 내 시너지 효과도 크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2020년까지 현대건설에 10조원을 투자해 수주액 120조원, 매출 55조원의 글로벌 종합엔지니어링 업체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시너지 효과 적고, 리스크는 크고 = 하지만 현대건설 인수 후보자로서 현대차와 현대그룹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21세기에 적통성 논란을 벌이는 것도 '넌센스'이지만 시너지효과면에서도 둘 다 '베스트' 후보로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당장 현대그룹의 경우 그룹 주력사업인 물류, 대북사업과 건설간 시너지 효과를 주장하지만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하나대투 이창근 수석연구위원은 "시너지 효과는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데 현대그룹의 경우 현대건설에 줄 것이 마땅치 않다"며 "대북사업 얘기를 하지만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설과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문욱 KB투자증권 이사는 "사업구조상으로는 현대차나 현대그룹간 큰 차이가 없다"며 "다만 향후 EPC(설계·구매·시공)업계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자본력이 좋은 현대차가 좀 더 나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자동차 전문그룹인 현대차가 전혀 성격이 다른 건설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면 자칫 그룹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명기 한남대 교수는 "폭스바겐, BMW, 벤츠 등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은 부품회사나 할부금융 등 연관성 있는 기업 외에 계열사를 두지 않는다"며 "현대차가 연구개발에 집중하지 않고 건설 등에 역량을 분산해서야 이들 업체를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건설 인수에 참여한 현대차에 대한 외신들의 시각이 곱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대차는 이미 여러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동차산업과 연관돼 있다"며 "그러나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는 사업 유사성 관점에서 보면 논리가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M&A 숨은 의도는 = 그런데도 현대차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옛 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갖고 있으며 현대상선이 대부분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금융권 우호 지분을 포함해 현대상선 지분 40.76%를 확보하고 있고, 현대중공업, KCC 등 범현대가는 30.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 8%가 현대차로 넘어가고, 금융권도 등을 돌리면 그룹 경영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자동차 역시 건설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것은 명분에 불과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송덕용 회계사는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현대차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며 "경영권 승계 목적이 개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데에는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엠코와 합병시켜 정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확대하고 경영권 승계 자금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는 M&A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흑색선전'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실제 현대차는 현대건설과 엠코와의 합병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경제개혁연대 채이배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대주주의 결정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것처럼 대주주 필요에 따라 나중에 현대건설과 엠코의 합병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며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의 경영이 회사의 이익이나 주주 이익에 부합하느냐보다는 대주주의 의사결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주주 이해에 따른 일방적인 결정이 해당 기업의 부실은 물론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민경제 부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민주·우리사주 대안도 고려해야 = 노조가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증권 노조는 "오너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해서는 안된다"며 지난달 29일 여의도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이에 앞서 박유기 전국금속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인사 1169명은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를 반대하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노동자와 중소협력업체의 노력과 국내 소비자들의 지원으로 벌어들인 돈을 현대건설 인수에 투자하지 말고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옛 현대재벌의 부활을 꿈꾸는 몽구 회장 개인 판단에 따라 수조원을 현대건설에 쏟아부으려한다"며 "자동차 전문기업으로서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과거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위해 투자하는 게 과연 맞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대건설을 인수할 돈이 있으면 사내 고용 문제부터 푸는 게 현대차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라며 "최소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건설 인수자금의 10%만 써도 현대기아차와 계열사의 사내하청 노동자 2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오는 17일 정책토론회를 열고 노동조건, 산업발전, 지배구조 측면에서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에 따른 문제점을 공론화한다는 방침을 세워놨다.
일각에선 채권단이 혈세를 들여 건실한 기업으로 부활시킨 현대건설을 다시 재벌에게 넘기는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명기 교수는 "인수 후보자들에게 문제가 많다면 M&A를 중단시키면 된다"며 "공적자금 회수도 중요하지만 M&A 이후 영향과 국내 산업 발전 방안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채권단이 회수하려는 돈은 결국 국민들의 돈"이라며 "국민주나 우리사주 등 다양한 대안을 열어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