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삽코리아/한국우리사주협회

되돌다보는 뉴스 : ‘억지로’ 산 우리사주 ‘億대로’

‘억지로’ 산 우리사주 ‘億대로’ 증권사 정보통신업계등 ‘억대 샐러리맨’ 봇물

재벌 계열사인 S사에 근무하는 박모과장(37)에게 지난 1년은 랭보의 시 제목처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다. IMF관리체제에 돌입한 직후의 살벌한 구조조정, 이전보다 20%나 줄어든 연봉을 받으면서도 목을 움츠려야 했던 것을 이르는 얘기다. 그러나 그 인고의 세월을 겪고 난 요즘, 그는 자신의 생활을 두고 한 영화 제목을 떠올린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는 최근 남부럽지 않은 '억원대 샐러리맨' 대열에 합류했다. 박씨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 가하는 펀드매니저도 아니고, 막대한 성과급 을 받는 증권사 직원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 이런 그를 돈방석에 앉게 한 것은 다름아닌 우리사주였다.
올해로 입사 10년차인 그는 우 리사주 2000여주를 가지고 있다. 이 주식의 절반 이상은 작년 이후 올해까지 회사가 4차 례의 증자를 실시하면서 그에게 배정한 분량 이었다. 당시로서는 가뜩이나 돈가뭄에 시달리던 그에 게 우리사주 배정이 달가웠을 리 만무한 일. 그러나 '우리사주 받을래, 아니면 회사에서 나갈래' 식의 분위기 속에서 그를 비롯한 사 원들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은행 이율이 20%를 오리내리던 때에 회사가 무이자로 융자를 내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던가.

'울며 겨자먹기'로 '생존'을 위해 주당 평균 1만원 정도에 산 회 사주식이 다섯배나 뛰면서 그는 융자금을 빼 고도 1억원이 넘는 평가차익을 얻었다. 그는 "이 돈으로 뭘 할까 행복한 공상에 빠지는 낙 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직원들 상장땐 모두 억대 재산가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오르내리는 활 황장세가 지속되면서 우리사주를 배정받은 상 장회사 직원들의 표정엔 함박웃음이 가득하 다. 주식에 손대지 않아 '불출이' 소리를 듣 는 재테크 문외한조차 자사 주식의 시황을 체 크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와 함께 기업체에서는 '오천㈜ 과장' '만주부장' 등 보유주식수와 직급을 결합한 새로운 별명 작법도 유행하고 있다. 월급쟁이 세계를 휩쓰 는 주식열풍의 중심에 우리사주가 놓여 있음 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은 IMF였다. 상장회사의 경우 우 리사주는 일반적으로 증자시점에 맞추어 배정 된다. 따라서 아무리 근무기간이 길어도 회사 가 증자를 실시하지 않으면 우리사주는 남의 나라 이야기.

그런데 마침 IMF관리체제가 시 작된 작년, 대다수 상장사들은 부채비율을 줄 이라는 정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대규모 증 자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앞서의 박과장처럼 마지못해 우리사주를 떠넘겨받았 다. 주식시장은 '맛이 간' 상태인 데다가 임 금삭감으로 돈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

더욱이 이전에 실시된 유상증자로 배정받은 우리사주도 매입가 이하로 떨어진 상태여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 증권거래 소가 작년 11월 우리사주를 보유한 465개 상 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MF구제금융 신청 직전인 재작년 11월20일부터 1년간 우리 사주 조합원들이 본 평가손은 1인당 평균 184 만1000원에 달했다.

그러나 작년 말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주식시 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1년전 '노비문서'라 불리던 천덕꾸러기 우리 사주가 황금거위로 변한 것이다.

여기에 우리사주의 의무예탁기간을 대폭 줄이 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가뜩이나 달구어진 우 리사주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6 월24일 재경부가 입법예고한 증권거래법 시행 령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7년인 의무예탁기간 은 올해까지는 3년, 2000년부터는 1년으로 줄 어든다.

예를 들어 지난 96년 3월31일 취득한 우리사주는 99년 6월말에는 3년3개월을 보유 하고 있으므로 현행법 아래서는 인출이 불가 능하지만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에는 인출이 가능하다. 또 99년 1월1일 취득한 우리사주는 2000년 1월1일 이후 인출할 수 있다. 현재 규 제개혁위에서 심의중인 시행령 개정안은 7월 안에 확정돼 관보 게재와 함께 발효될 예정.

“회사 더 다닐까? 우리사주 팔아 사업할까”

우리사주를 둘러싼 가장 극적인 장면은 작년 사상최대의 호황을 구가한 증권사들, 그 가운 데서도 업계 최고의 주가를 기록중인 삼성증 권에서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작년 5월 100%(869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당시 1200명의 우리사주조합원에게 우선 배정된 주 식수는 모두 313만5700주. 10년 정도 근무한 과장급에게는 5000주, 부장급은 1만주 가량의 물량이 배정됐다. 이때 일부 직원들은 '어려 울 때 회사 한번 돕자'는 심정으로 실권주까 지 사들였다.

당시 3000원대를 오락가락하던 주식을 액면가 5000원에 사들였으니, 당사자 들로서는 큰 모험이었던 셈. 그러나 이 도박 은 반년만에 성공으로 드러났다. 작년 11월 1 만8000원대에 올라 직원들을 흥분시키더니 요 즘엔 8만원대로 치솟은 것.(7월16일 종가 8만 1300원). 매입가격에 비해 무려 16배가 오른 것이다.

요즘 이 회사 직원들은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 다. 그룹내에 삼성자동차처럼 퇴출을 눈앞에 둔 계열사가 있는 상황에서 드러내놓고 샴페 인을 터트렸다가는 공연히 위화감을 조성한다 는 회사의 걱정 때문. 직원들에게 언론과의 개별 접촉을 금지하고 모든 회사 얘기는 홍보 실을 통하도록 했다.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작년 같으면 농촌총각 다음으로 결혼하기 힘 들었던 증권사 직원들이 모처럼 좋은 시절을 맞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배고픈 것은 참 아도 배아픈 것은 못참는 요즘 세태에 드러낼 일이 못된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지난 몇년 사이 파죽의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 는 정보통신업체 직원들 역시 요즘 웃음을 잃 지 않고 산다. 올 6월 논란 끝에 증자를 실시 한 SK텔레콤은 근무연수와 직급, 연봉에 따라 대리 30주, 과장 50주, 부장 60주 가량을 배 정했다.

우리사주 주당 매입가격은 95만7000 원. 매입자금의 90%를 회사가 은행이자로 융 자해 주었고, 사원들은 10% 정도만 현금을 냈 다. 귀신도 모르는 게 앞으로의 주가라지만, 지금의 시세만 유지된다면 직원들은 향후 1주 당 50만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얻는다.

황제주 SK텔레콤보다 더 짭짤한 평가익을 얻 은 곳은 작년 11월 코스닥에 등록한 신규법인 하나로통신. 작년 1월과 9월, 올 7월 등 지금 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증자를 실시한 이 회사는 직원수가 적어(7월1일 현재 660명) 1 인당 평균 5500주의 우리사주를 가지고 있다. 1차와 2차 증자 때의 우리사주 배정가격은 5320원과 5800원, 현재 가격은 2만원선.

기업을 휩쓰는 우리사주 바람은 상장회사에 머물지 않는다. 상장회사 직원들은 자신들보 다 장외에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비상 장회사의 직원들이 더욱 짭짤할 것이라고 시 샘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삼 성그룹 계열의 비상장회사인 삼성생명의 직원 들은 지난 5월 사주조합을 결성하고 요즘 '차 분하게' 돈벼락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원들이 예상하는 배정주식은 평균 100~150주 정 도. 물론 매입가격은 액면가인 5000원이다. 만약 삼성차 처리와 관련해 이건희회장의 사 재출연 논의 과정에서 나온대로 상장 이후 주 당 가격이 70만원에 이른다면 8000여명의 직 원은 삽시간에 억원대 재산가가 된다.

각 기업의 우리사주 보유 사원들이 뜻하지 않 은 돈벼락을 맞으면서 보여주는 태도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우리사주 관련법이 개정 되면 즉시 현금화할 수 있으니 이참에 훌훌 털고 '머슴살이' 그만하자는 파와 좀 더 기다 리자는 파가 그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상장이 예정된 비상장회사에서 두드러지게 나 타난다. 2001년 상장하는 삼성 SDS는 가뜩이 나 낮은 퇴직률이 요사이 더 낮아졌다. 상장 직전 증자가 있을 것이고, 이 때 우리사주를 더 배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 이 회사 의 주식은 최근 장외시장에서 15만~17만원선 에 거래되고 있다. 홍보실의 윤영호과장은 "높은 주가가 사원들의 사기진작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증자 안한 포철등은 상대적 박탈감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우리 사주 광풍에서 소외된 기업의 직원들은 요란 한 남의 잔치소리를 들으며 허탈한 표정이 역 력하다.

특히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이른 바 '빅5' 가운데서 SK텔레콤이나 삼성전자와 달리 민영화 이후 증자하지 않은 포항제철이 나, 작년 말 신주발행 없이 구주만으로 직상 장한 한국통신의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다. 포철의 한 직원은 "회사 덩치만 컸지 사원 개인의 실속은 개뿔도 없다"고 탄 식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우리사주로 큰 돈을 번 샐러리맨들 은 "따지고 보면 사정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엄살을 부린다. 우리사주를 통해 번 것은 평가이익이지 지금 당장 실현된 이익이 아님에도 든든한 '믿는 구석' 덕에 씀씀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S사의 한 고참 과장은 "예전같으면 맥주나 소주에서 머물던 술자리가 강남 룸사롱으로 이어지고, '명품' 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쓰는 직원들이 크게 늘 어났다.

나만 해도 작년 같으면 한달 20만원 안팎이던 카드결제대금이 100만원대를 넘어섰 고, 빚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사주제도의 목적이 종업원의 애사심을 높 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종업원들은 회사의 발전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데 있다면, 우리 사주를 둘러싼 최근의 주식열풍은 본래의 효 과를 충분히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주식시장에 대한 직장인들의 과도한 관심이 계속된다면, 회사 일 열심히 하고 한 푼 두푼 월급 모으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